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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SAKAMOTO/Post

사카모토 류이치와 그의 볼레로



  사카모토 류이치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유명 인사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피조물처럼 느껴진다. 이 사람한테 결점이라는 게 있을까 골똘히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나 [마지막 황제]에서 보여준 발연기 말고는 결함이라고 할 것이 딱히 없는 것 같다 (?). 과거를 들춰본다고 해도 나름 엄친아 집안에 엘리트 음악인 코스를 밟고 젊은 나이부터 명성을 얻었다는 점에서 경악만 나올 뿐이다. 본인은 늘 겸손한 태도로 자신을 낮춰 말하지만, 사카모토 류이치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건 이름만 건너들어본 사람이라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존재로 다가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가 만들어낸 음악을 들을 때면 사카모토 류이치의 인간성이 조금이나마 전해진다. 특히 자신이 동경하는 음악인들한테 애정을 듬뿍 바친 사적인 곡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앞서 말했듯 사카모토 류이치는 음악인의 정석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3살 무렵에 피아노를 배웠고 5살 때는 멜로디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10살부터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비틀즈나 롤링스톤즈처럼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밴드 음악은 물론이고 드뷔시나 바흐, 베토벤, 라벨 등을 들으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펼쳐나갔다.



  첫 번째로 이야기할 음악은 영화 [팜므 파탈]의 사운드트랙인 Bolerish다. 곡명에서 바로 짐작할 수 있다시피 라벨의 볼레로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팜므 파탈]의 연출을 담당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은 본인의 영화 음악을 담당하게 된 사카모토 류이치한테 '볼레로에 한없이 가까운 음악'을 요청했다. 어렸을 때부터 프랑스의 인상주의 음악을 사랑했던 사카모토 류이치는 옳다거니 하고 그 의뢰에 온전히 회답하는 작품을 작곡했다.


  13분이라는 곡 길이나 다양한 악기들이 등장하는 진행 방식부터 그 유명한 춤곡이 자동으로 연상된다. 고전적 형식을 중요히 여기면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운다는 점은 모리스 라벨과 사카모토 류이치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다만 Bolerish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멜로디가 가미되어 원곡과도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팜므 파탈] 본편에서는 영화의 1막을 책임지는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이 곡이 사용된다. 이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 한국의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밀정 (2016)]에서도 똑같이 오마주된다. (이쪽은 Bolerish가 아닌 라벨의 볼레로가 사용된다.)



  허나 사카모토 류이치는 Bolerish를 사운드트랙 그대로 연주한 적이 아예 없다. 라이브 콘서트에서 이 곡을 연주할 땐 주로 피아노 독주 버전(https://youtu.be/Bk-5yODX8_Y)이나 그 피아노 버전에서 비롯된 관현악 버전을 선보인다. 라벨의 숨결이 상당 부분 들어가 있던 곡이 시간을 거듭하고 비로소 사카모토 류이치만의 음악으로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인상주의 음악을 향한 사카모토 류이치의 러브 레터는 이대로 멈추지 않았다. 2014년에 발표한 Blu는 일본의 정장 회사인 AOYAMA가 설립 50주년을 기념하여 사카모토 류이치와 컬래버레이션을 이룬 프로젝트 음악이다.


  Bolerish와는 정 반대로 이쪽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줄곧 들려주었던 시적인 피아노 선율을 이어가다가 중반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볼레로의 형식을 띤다. 이는 볼레로 하나뿐만이 아니라 모리스 라벨이라는 인물의 다양하고 섬세한 오케스트라 편성을 의식한 듯 보인다. 수없이 많은 소리를 채집하고 자신만의 형태로 나타내는 건 사카모토 류이치의 오랜 작업 방식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는 뉴에이지 음악이 제일 유명하지만 이는 앰비언트 음악, 일렉트로닉, 사운드트랙을 작곡할 때에도 적용된다.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내한 GV 때 사카모토 류이치는 바흐를 두고 '절대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태양 같은 존재'라고 묘사했다. 사실 내게 사카모토 류이치가 그런 존재다. 동시대 누구한테나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60대 노인도 본인이 동경하는 인물들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 아이가 될 뿐이라니 미묘할 따름이다. 어쩌면 그의 눈빛이 여전히 바래지 않는 이유도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끊임없이 실험하고 또 여정을 멈추지 않아서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