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보위의 대표적인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Ziggy Stardust)

2018.12.17 19:26DAVID BOWIE/Posts


  ‘지기 스타더스트’는 데이빗 보위라는 음악인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간단명료하면서도 잃을 부분이 많은 애증의 아이콘이다. 빼빼 마른 몸을 감싸는 오색찬란한 점프슈트, 도화지처럼 말끔한 얼굴 위의 덕지덕지 화려한 메이크업, 원조 ‘병지 컷’이라고 할 수 있는 독특하고 새빨간 헤어스타일은 누가 뭐래도 지기 스타더스트의 상징이다. 지기 스타더스트를 선보이는 데 앞서 데이빗 보위는 이미 상승세를 타고 있던 신예였다. Space Oddity나 Life on Mars? 등 데이빗 보위 특유의 스페이스 록은 자연의 허무주의나 삶에 대한 회한을 다루며 당시 또래 청년들의 입방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데이빗 보위가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입지를 다졌던 계기는 1972년 1월 말 ‘멜로디 메이커’라는 잡지를 통해 본인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백한 이후였다. 아직 퀴어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던 영국 사회는 데이빗 보위의 커밍 아웃을 사건으로 여겼다. 충격과 비난이 당연했지만 신인 팝 스타의 고백 덕분에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히 깨달은 이들도 많았다. 이처럼 영국 대중문화에 크나큰 놀라움을 선사한 데이빗 보위는 3주 후 자신의 모습을 아예 탈바꿈시켜 신드롬까지 일으키기도 했다. 1972년 2월 11일, 데이빗 보위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지우고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화성인 록 스타로 대중 앞에 나타났다.


  커밍 아웃에 이어 눈 둘 데 없는 충격적인 외양 때문에 데이빗 보위는 당시 영국 보수층 사이에서 공공의 적이었을 테다. 하지만 그해 6월에 발표된 5집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와 거미들의 흥망성쇠)’는 반박의 여지없이 명반이었으며 데이빗 보위는 반발 세력들을 보기 좋게 뒤엎었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상업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음악성에서도 분명한 업적을 세워나간다. 일본의 가부키 메이크업, 프랑스의 샹송 스타일, 독일의 카바레 문화를 적극 도입하며 ‘들어갈 땐 마음대로지만 나갈 땐 절대 아닌’ 미지의 매력을 뿜어냈다.



  아포칼립스를 앞둔 암울한 사회를 다룬 Five Years, 외계인 구세주가 재난에 빠진 지구를 구원하리라고 예언하는 Moonage Daydream과 Starman, 화성인 록 스타 ‘지기 스타더스트’의 흥망성쇠를 담은 Ziggy Stardust, 실의에 빠진 청년들을 위로하는 Rock’n’Roll Suicide 등은 흔히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의 명곡으로 꼽힌다. 특히 1972년 7월 6일 영국의 인기 음악 방송인 ‘Top of the Pops’에서 선보인 Starman은 데이빗 보위를 명실상부 스타덤에 오르게 한 효자곡이다. '화성에서 온 거미들'은 지기 스타더스트가 이끄는 밴드 멤버들을 일컬으며 기타는 믹 론슨, 베이스는 트레버 볼더, 드럼은 믹 우드맨시가 담당했다. 이들은 데이빗 보위의 개성 있는 공연 스타일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밴드였다. 특히 믹 론슨의 끈적하고도 현란한 기타 연주는 여전히 로큰롤 팬덤 사이에서 전설로 회자되기도 한다.


  이처럼 데이빗 보위는 자신의 커리어뿐만 아니라 글램 록 역사에서도 지울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성공한 영국 록 뮤지션이 다음에 택한 길은 당연히 미국행이었다. 데이빗 보위는 출세작인 지기 스타더스트 컨셉을 그대로 이어나가며 6집 Aladdin Sane을 발표한다. 타이틀 트랙이기도 한 Aladdin Sane과 시간의 불가피성을 노래한 Time은 평소 재즈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데이빗 보위의 실험성이 돋보인다. 1970년 동명의 곡(또 다른 대표 글램 록 뮤지션인 마크 볼란이 기타를 녹음했다.)을 셀프 커버한 The Prettiest Star, 롤링 스톤즈의 곡을 글램 록으로 편곡한 Let’s Spend the Night with Together,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던 이기 팝을 모델로 한 The Jean Genie는 이후 데이빗 보위만의 커버 앨범인 Pin Ups의 주춧돌이라고 할 수 있다.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던 지기 스타더스트 컨셉은 1년 반도 채 안 되어 마무리된다.



  단물이 빠진 것도 아니고 창작 욕구가 떨어진 것도 아니었으며 오로지 창작자 혼자만의 의지로 끝이 난 것이었다. 1973년 7월 3일 런던 오데온 극장에 선 데이빗 보위는 Rock’n’Roll Suicide 무대를 앞두고 이 투어가 지기 스타더스트의 마지막 공연임을 고백했다. 이는 전속 밴드인 ‘화성에서 온 거미들’조차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뒤 무대 위의 지기 스타더스트는 갑자기 쓰러지고 만다. 충격의 도가니 속에서 지기 스타더스트는 죽고 없어졌지만 이후 데이빗 보위는 다시 자신의 본래 이름을 앞세우며 대중 앞에 나타났다. 아무래도 자신의 가상 캐릭터가 본인보다 더 큰 명성을 얻었기 때문에 충돌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짧은 방황 끝에 데이빗 보위는 이후 인터뷰에서 그간 본인이 만들어낸 페르소나들을 아낀다고 밝힌 바 있다.


  비록 지기 스타더스트는 죽음을 맞이했으나 데이빗 보위는 자신의 시그니처였던 글램 록 음악을 한동안 유지하기도 했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와 글램 록을 결합한 Diamond Dogs 앨범이 대표적인 예다. 이중 ‘보위스러움'의 집대성이자 총정리라고 할 수 있는 수록곡은 바로 Rebel Rebel이다. 이 곡은 마치 데이빗 보위가 성 정체성/성 지향성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는 일부 청년들한테 전하는 메시지로 들린다. 이 곡은 브루스 스프링스틴, 베이 시티 롤러스, 마돈나 등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커버하기도 했으며 데이빗 보위의 마지막 글램 록이라고 일컬어진다. 지기 스타더스트의 연장선상으로 여겨지는 Diamond Dogs 활동도 끝이 나고 데이빗 보위는 9집 Young Americans를 통해 글램 록이라는 장르와 영원히 작별을 고한다.



  글램 록과 지기 스타더스트 활동은 데이빗 보위의 음악 인생 중에서 고작 4년 여밖에 되지 않지만 그 영향은 세월이 흘러도 회자될 만큼 어마어마하다. 본인조차도 플라스틱 소울, 씬 화이트 듀크, 베를린 3부작 등을 통해 지기 스타더스트의 망령에서 벗어나려고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끊임없는 음악적 시도와 이를 기반으로 한 깊은 자아 성찰 덕에 데이빗 보위는 대중음악에서 더욱 중요한 아티스트로 거듭났으며 이전 활동들 역시 스스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가장 찬란했던 지기 스타더스트의 역사는 지금의 대중문화에서도 귀감이 될 정도로 그 빛을 간직하고 있다.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이 데이빗 보위의 전성기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지만 가장 눈부신 시기라는 점에서는 다들 인정하리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