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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SAKAMOTO/Post

사카모토 류이치 킨포크 매거진 인터뷰 (2019.03.08)

 

당신은 바흐가 음악을 작곡할 때 '신께서는 왜 이런 고통을 주는가'라는 심정으로 곡을 썼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도 곡을 쓰면서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가?
  바흐는 희망적인 작품을 많이 썼지만, '마태오 수난곡' 같은 주요 곡들은 극심한 고통으로 가득찬 듯 들린다. 그는 분명히 주위 사람들의 비극과 슬픔을 응시하고 있었다. 음악으로 세상을 구원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기도를 담은 작품이었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해일과 원자력 발전소 사건에 대한 충격은 여전히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다. 그건 대체 뭐였고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여전히 답을 얻지 못했지만, 재해 지역 아동들을 돕고자 그들에게 음악을 돌려주려고 노력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나는 그 사건들을 지금도 가슴에 두고 있고 그 영향으로 음악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을 작업할 때마다 자연에 존재하는 소리들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밖에 나가서 음악을 듣는 건 시간 낭비다. 바깥에는 흥미로운 소음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가 내릴 때마다 나는 창문을 열어 바깥에 녹음기를 둔다. 늘 놀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바르셀로나 같은 도시에서 들리는 순찰차 사이렌 소리가 그 예시다. 어디든 물건을 툭 쳐서 소리를 확인한다. 소리의 완벽한 개념을 찾을 때까지 말이다. 아직 깨닫지 못해서 여전히 찾아나서고 있다. 자연을 듣는 데 만족했다면 음악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모순되는 지점이다.

오늘날 음악이 너무 많이 있다고 생각되나?
  대학에서 나는 민족 음악을 공부했다. 교수님이 내가 좋아하는 개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유럽과 아시아에는 오직 한 가지 음악만 있던 마을들이 수두룩했다. 같은 음이지만 다른 가사로 결혼식부터 장례식까지 모든 걸 담아낸 음악이다.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 역사,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돈을 벌려고 만들어낸 음악보다도 나는 그런 음악의 양질을 더 좋아한다. 물론 진심 어린 창작자들과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래도 너무 많은 음악이 있다고 본다.

적절한 장소에는 적절한 음악이 있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영화 음악도 마찬가지고 작년에 만들었던 Kajitsu 식당 플레이리스트에서도 알 수 있다. 어떤 경위로 그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나?
  사운드는 음식의 품질뿐만 아니라 공간의 미학에까지 어울려야 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Kajitsu의 메뉴는 일본의 전통 음식인 카이세키를 바탕으로 한 음식들이다. 매우 느리고 정적이며 음식들은 하나씩 하나씩 대접된다. 바 뮤직은 필요 없고 어쩌면 음악을 아예 사용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그래도 약간의 변화가 손님들의 기분을 더욱 좋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가끔씩 Kajitsu에 들러 음량을 확인하는데... 매번 "너무 커!"라고 따진다.

 


음악을 아우르는 세심한 감독이 당신이 작업했던 노키아 벨소리와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70년대 초반부터 나는 음악뿐만 아니라 도시의 음향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도시 생활 속 소음들과 특유의 소리들 말이다. 노키아 말고도 70년대와 80년대 때 수많은 광고 음악을 작업한 경우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일본 사람들의 소리 환경을 바꾸면 무척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노키아 벨소리를 작업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공항 로비나 길거리에서 음량 큰 휴대폰 벨소리를 듣는 데 몹시 지쳤었다. 그 유명한 벨소리가 어디든 시끄럽게 울렸었다!

소리에 대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는가?
  아마 영화 음악에 대한 최초의 기억일 것이다. 네다섯 살 때쯤, 아마도 영화관이었을 듯한 어두운 공간에서 나는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 어떤 영화인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나고 메인 테마곡의 선율과 흑백 화면만 확실했다. 라디오에서 그 음악이 흐를 때마다 번쩍 뛰어올라 "그 음악! 그 음악이다!" 하고 좋아했다. 수십년 후 그게 펠리니 감독이 연출했던 [길 (La Strada, 1954)]의 테마곡이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음악과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시절에 했던 음악이 다르다고 생각하나?
  그때 음악을 다시 들으면 매우 힘이 넘치고 강력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당시에는 "컴퓨터 음악"이라면서 매우 차갑게 여겨졌다. 사실 80%는 직접 손으로 연주한 거였지만... 오늘날 다시 그렇게 연주할 수 있겠냐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땐 청춘이었다. 전적으로 나의 과거이며 이미 끝난 이질적인 기억들이다. 하나의 챕터로 생각하고 나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이제는 침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침묵의 중요성이 더욱 늘어나고 있다. 바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우린 두뇌가 쉴 만한 균형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매일 입력하기만 바쁘고 표현할 시간은 놓치고 있다. 그건 나쁜 현상이다. 2016년에 async 앨범을 작업하고 있을 때, 스스로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보는 걸 금기시했다. 그저 정보만 섭취하면 움직이는 걸 할 수 없게 된다.

비극이 생기면 극심한 정적이 흐른다. 직접 911 테러를 목격했는데 왜 도시는 늘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뉴욕 사람들은 충격을 가라앉히는 데만 일주일 가까이 필요했다. 사흘 정도는 다들 친인척이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확인하는 데 급했고 어쩔 도리가 없어보였다. 신경이 날카로웠다. 다들 음악을 생각하거나 들을 겨를이 없었다. 음악은 절망을 뒤따른다. 나도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똑같은 일을 겪었다. 충격을 받았고 나 역시 신경이 날카로웠을 것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음악을 듣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그건 구원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잠에서 깨면 노래를 부른다.
  피나 바우쉬가 계속해서 하는 말이 있다. "춤춰! 춤춰! 그렇지 않으면 우린 길을 잃을 거야." 문화적으로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우리는 춤과 음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길을 잃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