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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Movie

[옥자 (Okja, 2017)] 감상

 

  [옥자]가 개봉되고 나서 혼자 눈치 보느라 어디에서건 말 못 했던 부분인데, [옥자]에는 선량한 사람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어른들의 잔혹한 세계에서 그나마 옥자와 오래 함께했던 미자가 가장 양심적인 인물이라고는 할 수 있지만, 그런 미자마저도 의식주를 해결하는 초반부부터 옥자를 향해 속물적이거나 이기적인 근성을 드러낸다. 대표적인 예가 절벽에 떨어질 뻔한 곤경에 처했을 때 미자와 옥자에 대한 평소의 수직 관계가 확연히 나타나는 장면이다. 물론 영화는 인물들을 마냥 나쁘게만 담아내려고 들진 않는다. [옥자]를 재미있게 봤던 이유도 그렇게 다양한 면면들을 비춰주면서 저마다의 위선을 다루고자 했기 때문이다.

 

  동물 해방을 외치는 ALF 역시 자신들을 소개할 때 비폭력적이고 친환경적인 단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몰래카메라' 작전을 시행할 땐 대기업의 추악한 실태 고발이라는 명목으로 그 누구보다도 폭력을 방관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심지어 어쩔 땐 지나친 영웅주의에 빠진 듯 보인다. 미란도 회사의 기업인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이미 프롤로그가 시작될 때부터 관객들은 영화 속 틸다 스윈튼이 쓸데없이 아름다운 문장들로 본인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데 급급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고, 조니 박사를 연기한 제이크 질렌할 또한 어딘가 심하게 뒤틀려 도태되어 있다는 것이 분명히 전해진다.

 

  결국 이 영화의 유일한 피해자는 옥자 단 하나뿐이며 옥자를 둘러싼 모든 이들은 제 영광을 되찾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옥자]가 동물들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착한 영화'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썩을 만큼 썩은 자본 사회에 노출되면 그동안 무고했던 존재들마저 얼마만큼 망가질 수 있을까 상상해보는 어느 영화인의 악취미라고 다가왔다. 봉준호 감독이 그동안 현실 사회와 맞닿아 있는 작품들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운동권 영화'라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차라리 이 감독은 이미 [설국열차] 때부터 운동권이랄 것도 없이 현재 사회에 대한 모멸감을 끊임없이 분출해대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봉준호의 초기 작품들보다 [옥자]나 [기생충] 같이 뻔뻔한 최근작들에 더욱 흥미를 가지는 지점이기도 하다.